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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조 등급심사...'전기 밥솥으로 밥을 할 수 있냐'구요?|

  • 보은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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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10 오후 3:24:43
활동보조 등급심사...'전기 밥솥으로 밥을 할 수 있냐'구요?

[기고] 발달장애인 동생의 활동보조 등급심사, 불쾌한 질문의 스무고개
뉴스일자: 2017년09월25일 13시38분

유난히 날씨가 맑던 지난 9월의 어느 날, 나는 막내동생과 함께 국민연금공단 본사를 찾았다. 성인 중증 발달장애인인 막내의 활동보조지원 등급심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혼자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의 사업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서비스를 신청한 중증 장애인에게 전문 ‘활동보조인’을 매칭하고 그 비용을 정부가 분담하는 제도이다. 24시간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들에게 이는 참 반가운 제도다. 동생과 둘이 살고 있는 나 역시 지금은 혼자서 동생의 24시간을 돌보고 있지만, 만일 하루에 6시간이라도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누군가가 동생을 돌보아준다면 우리는 서로의 삶을 풍부하게 할 훨씬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속에 우리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했고 공단은 우리에게 ‘등급심사’를 받으러 오라고 연락했다. 장애당사자가 거동이 어려운 경우 집으로 방문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다니기가 불편하지는 않아 직접 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 날 나는 우리를 인터뷰한 공단 직원으로부터 평생 잊지 못할 하나의 질문을 듣고야 말았다.
 

“혜정 씨가 전기밥솥으로 밥을 할 수 있습니까?”
 

밥. 밥! 한국인에게 밥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 윤기 잘잘 흐르는 익은 쌀의 의미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정말이지 우스운 질문이었다. 이것이 이미 장애등급판정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중증 발달장애인임을 증명한 사람에게 가당키나 한 질문인가? 밥을 할 수 있으면 어떻고 밥을 할 수 없으면 또 어떻단 말인가? 전기밥솥과 밥이 왜 한 사람의 장애인의 일상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을 수도 있는 활동보조서비스 시간 판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블랙 코미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혜정 씨가 혼자서 라면을 끓일 수 있나요?” “언니가 밥을 차려주면 잘 먹나요?” 이쯤 되니 왜 국수는 삶을 줄 아는지 안 물어보냐고, 왜 마트에 가서 식빵 사다 잼 발라 먹을 줄은 아는지 안 물어보냐고 되려 묻고 싶어졌다. ”혜정 씨가 다가오는 위험물을 피할 수 있나요?” 우리는 활동보조지원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이지 막내가 주인공인 슈팅게임에 대해 말하려고 온 사람들은 아니다.


장혜정(왼쪽), 혜영 자매. ©장혜영


 

약 30분에 걸친 인터뷰의 전 과정에서 공단 직원은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얼만큼 원하는지를 묻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든 종이철과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우스운 스무고개를 되풀이했을 뿐이다. 심지어 장애당사자인 막내는 아예 처음부터 소통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공단 직원은 처음부터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나와 우리 부모님, 또 다른 가족들에 대해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을 꼬치꼬치 물었다. 활동보조서비스라는 것이 장애당사자와 그 가족에게만 집중되어있는 돌봄노동의 하중을 정부가 덜어주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닌가? 가족이 몇 명이든 이혼을 했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막내 이외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열성적으로 많은 것을 물은 것과 대조적으로 공단 직원이 막내에게 직접 물어본 것은 딱 세 가지였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 “오늘이 몇 일이에요?” “이름 한 번 써 보세요.” 발달장애에 대한 무지와 무지에서 비롯된 무례함은 덤이었다. “지적장애는 언제부터 있었어요?” 발달장애는 그 원인을 명확히 알기 힘들기 때문에 당연히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기도 힘들다. 나는 막내는 지적장애보다 자폐성장애 쪽이 더 심하고 13살 때부터 장애인수용시설에서 지냈다가 이제 막 다시 사회로 나왔기 때문에 사회속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기술은 거의 아무 것도 훈련되어있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이 분은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막내가 용변을 보고 뒷처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만 재차 물었다. 당사자를 앉힌 상태로 보호자를 동정하는 것은 인터뷰의 화려한 피날레였다. “어쩌다 언니 분이 이렇게 동생을 돌보게 되셨어요.” “언니 분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 스무고개는 되풀이 할수록 묻는 쪽도 대답하는 쪽도 서로 바보가 되는 게임이다. 하지만 나는 ‘심사대상’의 입장에서 이 수많은 불쾌함을 그 자리에서 대등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의 불만사항 자체가 심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그저 나는 이 우스운 과정을 통해 조각조각 기워 만들어진 막내의 초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더 웃긴 것은 심사의 다음 단계에서는 막내를 본 적도 없는 10명의 ‘심사위원’들이 이 인터뷰에 기초하여 막내에게 몇 시간의 활동보조를 할당할지 회의하고 결정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곱게 집에 앉아 그 심사 결과를 통보받으면 된단다. 시쳇말로 정말 환장파티다.
 

한편 서글펐던 부분은 이 면담을 진행한 공단 직원이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를 정말로 친절하게 대하는 것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정반대의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지금의 활동보조서비스 심사는 반드시 처음부터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심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필요한 것은 심사가 아니라 논의와 대화이다. 현재의 제도에서 장애당사자는 대화의 주체가 아니라 관찰의 대상으로 전락해있다. 만일 심사의 목적이 한정된 자원을 잘 분배하여 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심사는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고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 필요한 것은 대화의 형식이다. 왜 장애당사자가 무엇을 얼마만큼 필요로 하는지 직접 말하게 하지 않는가? 왜 당사자가 자기 자신을 더 풍부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질문을 고안하지 않는가? 장애인의 삶이야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이므로 몇 가지 ‘전문적인’ 질문들만 던지면 그 사람에게 적합한 지원서비스의 명세가 마법처럼 인쇄되어 나온단 말인가. 아닐 말씀이다.
 

그 날 나와 동생에게 쏟아졌던 많은 질문은 막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닫힌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늘 열려있다. 불확실한 미래와 열린 질문들은 때로 우리를 괴롭게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게 지금과는 다른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다. 우리가 모든 중증 장애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24시간동안 활동보조서비스를 당연히 제공받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그런 곳에 살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일단 관점을 바꾸자. 한 시간을 주더라도 열린 시간을 주라. 전기밥솥으로 밥 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더 인간다운 삶을 꿈꿀 시간을 주라.

 

장혜영'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음. 최근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하는 일상을 영상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인 <어른이 되면>을 진행하고 있음. 

>관련 기사: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하는 좌충우돌 일상,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 뉴스클리핑은 http://beminor.com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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